내용과 형식을 분리할 수 있는 도구 사용하기 (Feat. Markdown)
이전 포스팅 (Obsidian: 마크다운 기반의 제텔카스텐 도구) 에서 Obsidian 을 소개하며 마크다운의 장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했다. 본 포스팅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내용과 함께 소프트웨어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좋은 디자인의 특성: Orthogonality
대학생 때 들었던 수업 중, 공학 디자인에 관한 수업이 있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부터 제텔카스텐을 작성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한 가지 기억에 남은 내용이 있다.
아래의 두 수도꼭지 중 어느 것이 유저 인터페이스 관점에서 더 뛰어난 디자인일까?
1번 수도꼭지는 이제 주변에서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답은 2번일 것이다. 그 이유는 2번 수도꼭지에서는 수도꼭지가 조절해야 하는 주요한 두 가지 요소 (온도와 물의 양) 가 서로 독립적으로 조절되기 때문이다. 1번 수도꼭지의 경우 온도를 높이기 위해 뜨거운 물을 더 틀면 수량도 따라서 증가한다. 반면 2번 수도꼭지는 온도를 변경할 때 수량이 변경되지 않고, 수량을 변경하고자 할 때에도 온도가 변경되지 않는다. 이렇게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있을 때 각각을 독립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성질을 Orthogonality라고 부른다.
WYSIWYG 에디터의 단점
디지털 도구, 특히 글쓰기 도구에서도 이런 성질을 고려해볼 수 있다. 대부분 문서를 작성하는 도구로 처음 접하게 되는 프로그램은 MS Word 나 한컴오피스와 같은 WYSIWYG 에디터일 것이다. 이런 도구의 장점은 작업물과 결과물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즉 문서를 인쇄하면 내가 편집하던 모습과 동일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WYSIWYG What You See Is What You Get 의 약자로, 문서를 작성할 때 편집 화면에서 보이는 모습이 그대로 결과물이 되는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말한다. (Wikipedia) Microsoft Word 나 한컴오피스 등이 대표적인 WYSIWYG 에디터이다.
그러나 글쓰기 관점에서 보면, WYSIWYG 에디터들은 글을 쓰면서 문서의 디자인에 대해서 계속 신경을 쓰게 만든다. 글의 내용을 변경하려고 하면 문단의 모양이 바뀌고, 이미지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도 하며, 다른 부분의 글을 붙여넣으면 서식이 동시에 바뀐다 (느린 반응속도는 덤이다). 글쓰기는 높은 주의력을 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내용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참고: 자유로운 삶을 위한 생산성 갖추기), 내용을 바꿀 때마다 형식이 변경되면서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에디터들은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와 꾸미기를 분리할 수 있는 도구 사용하기
그렇다면 글을 쓸 때에는 글쓰기에만 집중하고, 모양은 나중에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대표적이면서 사용하기 쉬운 예로 Markdown 이 있다 (과학 논문이나 출판물을 만들 때 쓰는 LaTeX 도 아주 훌륭하지만 약간의 학습이 필요하다). 마크다운은 일반적인 텍스트 파일이므로 글을 작성할 때에는 서식을 넣을 수 없다. 단지 내가 제목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부분, 강조를 하고 싶은 부분 등을 #
이나 *
같은 부호들을 통해서 표시할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작성하고 나면, 다음 단계로 원본 마크다운 파일을 웹 페이지나 PDF 등의 문서로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위 그림과 같이 마크다운 형식에서는 글쓰기 (작업물) 와 서식 (렌더링) 부분이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구성은 글쓰기와 렌더링 모두에 있어서 상당한 장점이 된다.
- 글쓰기의 경우, 글의 모양이 변하지 않아 주의력을 분산시키지 않고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도구를 사용하여 글을 작성할 수 있다. 이 블로그의 글도 모두 마크다운으로 작성되었는데, 글을 쓸 때에는 아이패드에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작성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기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프로그램들은 아주 빠르고 가볍다.
- 렌더링을 분리된 단계로 만든다는 것은 원본 소스를 다양한 형태로 가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Ulysses 같은 글쓰기 앱들은 Word 파일, PDF, E-book 등 다양한 내보내기 형식을 지원하고 있으며 pandoc 과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거의 모든 형식으로 변환이 가능하다. 나는 최근 몇 번의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도 마크다운으로 만들었다1.
마크다운과 같이 렌더링 단계를 거치는 프로그램들은 WYSIWYG 에디터만큼 쉽게 서식을 만들거나 변경하기가 어렵다. 표와 그림을 많이 배치하거나, 서식이 중요한 발표자료 또는 문서를 만들 때에는 WYSIWYG 에디터가 더 사용하기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할 때에는 주의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거의 모든 글을 마크다운으로 작성하고 있다 (참고: 디지털 도구를 고르는 기준). 꼭 마크다운이 아니더라도, 글쓰기의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추는 것은 주의력 보존을 위해 한번 쯤 고려해봐야 할 요소라고 생각한다.
댓글
해리한
블로그에 너무 좋은글이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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